갑자기

엄마의 오래된 난초가 갑자기 꽃을 피웠다. 아무런 징조도, 소리도 없이, 어느 날 문득, 긴 봉우리를 내밀며 꽃을 여러 송이 터트렸다.

밖에서 차도 한 잔 마시고 메시지도 주고 받던 이웃이 어느 날 말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바다를 건너, 원래 그녀가 살던 그 나라로. 허망함을 느낄 새도 없이 다음날 새로운 이웃이 이삿짐을 들고 나타났다.

잊혀진거라고, 혹은 거절당한거라고 생각했던 글이 미국 출판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유명 워크샵에 참여하게 되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기뻐할 자격이 있어요, 라는 말로 시작되는 이메일은 한낮의 소나기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나를 찾아왔다.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은 때에, 심지어는 모든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때에, 그때에도 기쁨은 성실히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고. 이제 나는, 그걸 믿어야 한다고.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좋은 결말을 상상하는 것. 나를 향한 좋은 의도를 믿어보는 것.하루하루를 견디는 것. 밀고 나아가는 것. 다시 시작해보는 것. 때때로 지치고 힘든 나에게 친절할 줄 아는 것.

8월이 왔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 가을이 오고 있다. 내가 시랑하는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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