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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를 떠나야겠다고 다짐한 건 아주 오래 전의 일이었다. 당시 나는 대학교 2학년 학생이었고, 뜻밖의 암 진단으로 인해 모든 걸 뒤로한 채 항암 치료에 전념하며 잠시 학업을 쉬고 있었다. 병원에서 보내는 긴 시간 동안 나에게 안식처가 되었던 건 도서관이었다. 나는 매일 아침 병원 5층에 있는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 프랑스에서 스페인까지 걷는 순례길에 대해 알게 되었고, 그날부터 가벼운 가방 하나를 메고 온종일 자연을 거니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근심, 걱정, 불안, 슬픔 ……. 나를 무겁게 하는 모든 걸 벗어 던지고.
그 꿈은 십 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이루어졌다. 그리고, 많은 것들이 그렇듯, 꿈은 현실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게나 내려놓고 싶었던 삶의 무게들 — 건강, 가족, 미래, 후회, 우울 — 은 인천에서 리스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까지 나와 함께했다. 게다 순례 직전에 중동에서 심한 정치적, 군사적 갈등이 벌어지면서 15시간의 비행 동안 나는 혹시나 비행기가 잘못 날아온 미사일에 맞을 수도 있단 생각에 내내 초조했다.
어찌어찌 리스본 오리엔트역 근처 숙소에 도착했을 땐 사방이 어두운 밤이었다. 원래 계획은 동네를 둘러보고 맛있는 포르투갈 음식을 먹는 것이었지만, 지친 몸과 마음 때문에 나는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저녁 식사 따위는 잊은 채 그대로 잠에 들었다. 미리 예약해둔 포르투로 향하는 다음날 기차는 오전 11시였다. 실컷 낮잠을 자고 일어나도 괜찮은 시간. 하지만 다음날 아침, 내가 눈을 뜬 시각은 오전 6시였다. 계획은 또 한번 틀어지고 말았다 — 마치 내 인생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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