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0
평안의 비결은 애써 그리운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 것. 슬픔을 과장하지 않는 것. 현재의 기쁨을 외면하지도, 물고 늘어지지도 않는 것. 참을 수 없는 순간의 강렬한 욕망을 삼켰다가 돌아서서 이를 갈며 한여름에 얼음을 씹어먹듯 분노를 자근자근 씹어대지 않는 것. 왜 내게 행복을 주지 않느냐고, 왜 늘 내게 씻어낼 수 없는 주먹만한 크기의 불행을 남기냐고, 하늘에게 따지지 않는 것. 때로는 갓 나온 부드러운 라떼를 마시듯이 가만히 슬픔이 내 목을 타고 흘러가게 놔두는 것. 내가 그것보다 더 큰 존재임을 아는 것. 내가 그것만큼 연약한 존재임을 아는 것.
…… 어떤 날은 이유도 없이 날이 좋다. 그럼 나는 커다란 나무 아래서 이런 부드러운 말들을 써낼 수 있다. 공기처럼, 물처럼 언어가 흘러나온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4월이 절반도 넘게 지나갔다.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 무언가를 더 해야겠다는 강박도, 여기가 아닌 다른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그냥 여기에 머문다. 하나의 숨을 마시고 다음 숨을 내뱉으며. 존재하고,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