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8



ㅡ 난 소나무 같아. 내가 말했다.

ㅡ 한 번 마음을 주면 거의 영원하거든.

그게 언제였더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디였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내 말에 피식 웃던 K의 얼굴만 기억이 난다.

ㅡ 왜 하필 소나무야. 열매도 없고 생긴 것도 심심하고. 그녀가 말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지적을 당한 것 같아 무안했던 나는

그저 하얗게 웃으며

ㅡ 그래, 난 대체 왜 이러니, 하면서 대화를 넘겼다.

그리곤 오랫동안 소나무를 그런 식으로 기억했던 것 같다.

열매도 없고 심심한 존재로.

멋이나 쓸모도 모르는 존재로.

* * *

오늘, 우연히 창밖으로 소나무를 봤다.

그 옆으로 난 나무들은 전부 봄을 따라 화려하게 꽃을 만개했지만

소나무만은 내가 늘 아는 모습 그대로였다.

한풀 꺾인 잿빛 초록으로. 단단하지만 구불구불한 앙상함으로.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 말고도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루하지만, 늘 거기에 있는 사람.

화려하진 않지만, 고독을 견딜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으로 ……

* * *

오래 전, 나무를 보러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여행사에 무작정 전화를 걸어 낯선 도시로 여행을 가고 싶다고 말을 하자

직원은 머뭇거리더니 새로 취항하는 항공편을 추천해주었다.

작은 온천 마을인데 커다란 도서관과 삼천년된 녹나무가 있다는 말과 함께.

나는 사진도 제대로 보지 않고 당장 표를 끊었다.

나무를 보러 T시까지 찾아온 대담하고 이상한 여학생은 나뿐이었다.

나무는 늘 혼자 있었고, 어째서인지 그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도 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건 내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매일 아침 나무 앞에서 얼마간 시간을 보내곤 했다.

구경하는 사람처럼. 기도하는 사람처럼. 혹은 생각하는 사람처럼.

* * *

실은 나무에게 묻고 싶었다.

삼천년의 시간 동안 무얼 보았는지.

인간은 얼마나 자주 어리석었고 얼마나 연약하게 당신에게 의지했는지.

불길한 역사는 몇 번이나 반복되었으며 그런데도 삶은 어떻게 계속되었는지.

나무는 답이 없었다.

다만, 그는 늘 거기 있었고,

시와 문학, 예술과 자연에 사랑에 빠져 있었던 어린 나는

그 침묵과 미스터리마저도 숭고하게 여기며 즐거이 집으로 돌아갔다.

* * *

소나무 같은 사람.

좀 심심하지만 성실하고 진실한 사람.

느려도, 포기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어 누군가에게 투명한 솔방울처럼 생긴,

다정하고 오래 가는 마음을 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 사람이 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https://youtu.be/OioIcJMBqdc?feature=sha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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